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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JBJ95 켄타, “꿈 하나만을 갖고 한국으로 향한” 군마의 소년이 K-POP 아이돌이 되기까지 <모델 플러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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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s://mdpr.jp/k-enta/detail/1840932)

 

[JBJ95 켄타/모델플러스 528] 켄타(24)는 한국의 인기 오디션 방송 [프로듀스 101시즌2]에서 주목을 받아, 그곳에서 만난 상균과 유닛 JBJ95로 활동하고 있다. 군마에서 태어나, 꿈 하나만을 가슴에 안고 한국을 목표로 했던 타카다 켄타의 반평생을 쫓아보자.

 

[프로듀스 101 시즌2]에서 일약 화제가 된 JBJ95 켄타는 누구?

켄타가 일약 유명하게 된 것은, 20174~6월 방송되어 한국에서 사회현상까지 불러일으킨 [프로듀스 101 시즌2]. 이는 101명의 연습생이 가혹한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과하여, 데뷔 멤버 11명에 뽑히기 위해 경쟁하는 방송이다. (그는) 유일한 일본인으로 출현하여, 씩씩한 캐릭터와 매력적이 춤으로 많은 팬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상위 11(워너원으로 데뷔)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방송 후 프로그램에서 인기가 있었던 연습생이 뭉쳐 6인조 그룹 JBJ로 같은 해 10월에 데뷔하였다. 기간 한정이었던 JBJ 활동이 끝나고, 201810, JBJ의 래퍼였던 상균과 함께 JBJ95로 다시 데뷔. 현재는 2인조 유닛으로 활동 중이다.

 

켄타는 성공한 오타쿠라고도 불리고 있다. 엄청난 케이팝 팬이었던 소년이, 실제로 케이팝 아이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틴탑]의 팬이었던 것이나, 일본에서 케이팝 커버댄스 발 댄스 보컬 유닛인 [가라가라헤비]로 활동했던 과거에도 이따금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그가 이 성공 스토리를 거머쥐기까지는 상상을 뛰어넘는 과거가 있었다.

 

켄타, 케이팝과 만남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원래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 가장 처음 케이팝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 때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연속 영상이라고 있잖아요, 거기에 여러 가지 케이팝 그룹들의 영상이 나왔었어요. 보았더니 정말 멋있는 무대라, 많은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원래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요(웃음). 개그맨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 케이팝과 만나 그때부터 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원래 연예계에 관심이 있었던 거군요.

그렇네요. 어릴 적부터 이러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반 친구들을 웃게 하거나,, 모두가 웃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어요. 좋은 타이밍으로 케이팝과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만, 만약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본에서 개그맨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케이팝 커버 댄스를 하기 위해서 매주 도쿄로 부모님에게는 [숨기고 있었다]

 

- 고등학생 무렵부터 케이팝 커버댄스를 추셨었네요.

케이팝에 흥미를 갖게 되었을 때, 커버댄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댄스는 그때까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커버댄스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시작하였습니다. 역시 댄스교실에 다니게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조금 시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도 커버댄스라면 취미로 할 수 있으려나,라고, 생각해서 해 본 것이 계기네요.

 

- 고향인 군마에서 하신 건가요??

도쿄요. 주말에는 군마에서 도쿄로 나오고, 평일은 학교에 가면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22년 동안 지속했죠.

 

- 도쿄에 갈 차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하셨나요)?

맞아요. 부모님께 계속,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감춰왔었어요. 그러니까 주말에 [친구네 집에 자러 간다]고 말하고 도쿄로 갔었습니다. 그래서 돈은 제가 마련하지 않으면 않았던 거죠..

 

- 엄청난 열정이네요

그래도 케이팝이라는 존재가 그 정도로 컸어요. (저에게) 꿈을 주었어요. 정말 아이돌이 되고 싶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거기서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 케이팝 커버댄스 쪽에서 유명한 댄스그룹에 소속되어 계셨죠. 그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처음에는 트위터를 통해서 같이 팀을 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왔어요. 기간 한정 그룹을 할 생각으로, 한두 번 이벤트에 나가기 위해서 모집해보자는 느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이대로 해볼까]라고. 그래서 커버댄스 그룹에서 저희만을 오리지널 곡을 만들고, 지하 아이돌 같은 느낌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 부모님에게는?

고등학생 때는 계속 비밀로 하고 있었습니다만, 고등학교 3학년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에 [사실 저는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 가수가 되고 싶다 라는 꿈을 그때 처음 전달했죠. 가능한 백업 해주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는 뭐, 이벤트 같은 것이 있으면 엄청 응원해주셨어요.

 

켄타, 운명의 한마디로 한국행을 결심

 

- 한국으로 진출하자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하 아이돌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동시에 케이팝 커버댄스도 계속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한국에서 케이팝 커버댄스 이벤트에 나가게 되어, 서울에 갔습니다. 그때, 당시 그룹의 리더의 친구인, 한국에서 이미 데뷔를 한 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역시 저도 고민하고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라는 것을 상담받았습니다만, 그분이 [한번 해 보는 게 어때? 와 볼래?]라고 말해주셨어요. 바로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 해보자. 지금밖에 없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 타이밍을 놓친다면 아마도 다신 갈 수 없다고.

그로부터 그룹을 그만두고, 8개월 정도 아침 점심 계속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한국에 갔던 거예요. 딱 20살이 끝나는 시기. 20살과 21살은 뭔가 다르잖아요. 21살을 넘어가면 무리다, 이 찬스는 분명히 오지 않을 것이다고 느껴서, 20151229일에 (한국으로) 갔습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가자,라고.

 

-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한국에 가고싶다]라고 말했을 때는, 아무래도 반대하시더라고요. [돈은 어떻게 할 거냐] 등등. 우리 집은 유복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정도로 열정이 있기에, 정말로 그 꿈을 이루고 싶어서 간다]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갔다 와. 성공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도록]이라고 마지막에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말을 가슴에 품고 (한국에) 갔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한국어도 모르는 채 매주 오디션을

 

- 한국에는 어떤 연고가 있었나요?

아뇨, 정말 돈과 느낌만으로 갔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살 곳도 없었기 때문에 고시원이라고 하는 한 방이 다다미 2장 정도의 샤워도 공동인 숙소에서 살면서 기획사를 찾았어요.

 

- 엄청난 용기네요.

그래도 당시에는 두근두근 거리는 것이 더 컸어요. 걱정은 하나도 없고, [얼른 가서 빨리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 기획사에 소속되기 까지 어떠한 생활을(하였나요)?

처음에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기에, 우선 한국어 교실에 2개월 동안 기본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한국어)교실에 다니면서, 대부분 어떤 기획사든지 주말에 오디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곳에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그러던 중에, 아까 말했던 한국에 와버려라고 말해줬던 선배가 [우리 사무실에 와서 같이 춤추자]라고 이야기해서, 놀러 갔다가 그 기획사 오디션을 봤어요. 그게 지금 기획사입니다.

 

 

[출구 없는 터널] 가혹한 연습생 생활

- 한국에서 기획사에 소속되면, 언제 데뷔할 수 있을지 모를 연습생 생활이 시작되죠. 역시 일본에서 활동할 때와 한국에서 연습생으로 사는 생활이 달랐나요?

다르네요. 역시 연습생이라는 것은 종일 연습밖에 하지 않고, 앞에 보이지 않는 정말이지 불안과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면 말도 통하고, 부모님도 계시고, 뭔가 정말 안 되겠으면 집에 돌아가 버리면 될지도 몰라. 한국에서는 그렇게는 안 되잖아요. 해외고, 친구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태라 힘들었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 연습생이 되고 나서 [프로듀스 101 시즌2]에 나가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나요?

1년 하고 2~3개월 정도네요. 그동안 계속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 당시는 무엇이 제일 힘들었나요?

앞이 보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정말이지, 출구 없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열심히 연습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거나 하면, 자신감도 사라지고 기분도 침울해지고. 그리고 금전적인 면으로도 고생하였습니다.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는 자유롭게 먹어도 되는 쌀밥과 김치가 놓여 있는데, 일주일 동안 맨밥과 김치만으로 생활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들었었죠.

 

[이젠 무리일지도] “프로듀스 101시즌2”에서 보인 빛

 

- 그 상황에서 [프로듀스 101시즌2] 출연이 결정된 거군요..

사실은 [이젠 무리일지도]라고 생각해서 일단 일본에 돌아와, 정리를 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1년이 지나, 더 이상 돈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무리인 거 아닐까라고. 일주일 정도 돌아와 있었습니다만, [마지막 3개월만 해보자]라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프로듀스 101시즌2]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나가고 싶다고 말하고, 오디션을 봐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 스스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던 거네요.

그렇죠. 전년도 방송되었던 [프로듀스 101]의 남자 버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속 기획사에 [정말 나가고 싶었습니다. 안 나가면 안돼요]라고 말해서, 오디션을 받으러 갔습니다.

 

- [프로듀스 101시즌2]는 매우 가혹한 프로그램이죠.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방송 처음 부분이었을까요. [나야나]라고 다 같이 춤을 추는 대표곡을 연습할 때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첫 수록부터 3일 정도 거의 잠잘 시간이 없고, 그동안 노래랑 춤을 외워야 했어요. 잠을 자지 않아서 춤을 외우고 싶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저 혼자 일본인이라 말도 안 통하고,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멘탈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 최종 순위는 24위였어요.

101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정말 [70번대만 들어가도 괜찮아]라고 회사에서 말했었어요. 그랬는데 제일 처음 순위가 21위였습니다. 정말 깜짝 놀라서 [, 더 힘내자. 힘내면 정말 앞이 보일지도 몰라]라고. 그때부터 좀 더 목표를 높게 잡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점점 생기는 법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있어 최종적으로 24위라는 결과에 도달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성공. 친구들의 희망이 된 켄타

- 지금 일본에 돌아올 타이밍에, 옛 친구들과 만날 계획은 있나요?

일본에서 활동할 무렵의 멤버들과는 돌아왔을 때 가끔 만납니다. 일본에서 열리는 라이브에 부른다거나, 시간이 있으면 밥을 먹으러 간다거나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지금 일본에서 아이돌 생활을 하고 있거나, 가수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거나, 각양각색이지만요.

 

-그럴 땐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역시 당시 멤버들 중에서는 제가 제일 먼저 데뷔까지 갔기 때문에, [용기를 줘서 고마워]라던지 [켄타를 보고 좀 더 힘내자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저도 그 말을 듣고 [더 힘내자] [좀 더 모두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죠.

 

저 역시 케이팝으로부터 용기와 꿈을 받은 처지고, 그렇기에 제가 가수가 될 때는, 나도 꿈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팬이든지, 가족이든지, 친한 사람이든지, 모두에게 꿈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데뷔해서 다행이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일본인의 케이팝 진출도 실감

- 최근, 켄타씨와 같은 케이팝 커버댄스 출신의 일본인이 대거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네요.

많죠. 예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최근 한국에서 음악방송에 나갔을 때, 일본인이 14, 15명 정도 있었어요. 한 방송에 그렇게 일본인이 있다니, 지금까지는 있을 수도 없었던 일이네요. 항상 4명 정도라던지... 그걸 봤을 땐, [정말 시대가 변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일본인끼리 교류는 있나요?

교류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함께 이벤트에 출연한 분께 인사할 기회도 있어서,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는 합니다. 저를 보고 한국에 올 목표를 세웠다고 하는 분과도 만나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 지금 하고 있는 [프로듀스X101]에도 일본인이 몇 명인가 참하고 있습니다. 선배로서 조언을 하신다면?

역시, 포기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프로듀스 101시즌2]에 출연했을 때, 대표셨던 보아 선배님이 저희들에게 말해주신 것이 [포기하지 마]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말이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 심플한 말에 담겨있는 생각이란 것은,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말입니다.

 

켄타가 말하는 [꿈을 이루는 비결]

 

-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낸 켄타씨로부터, 모델플러스 독자에게 [꿈을 이루는 비결]에 대해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할 것. 계속해 나가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하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죠. 계속해 나가는 노력이나 에너지, 열정이 있다면, 꿈이 무엇이든 이루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 감사합니다.

 

 

[꿈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한 켄타. 꿈꿔온 케이팝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연고도 없는 한국으로 건너가 스스로 오디션 방송에 참여하여 데뷔, 음악방송에서 1위까지 한 그를 통해 꿈을 꾸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케이팝 세계에 속하는 것, 하물며 성공할 때까지 지속하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힘든 세계이다. 그러나 그 가혹함을 뛰어넘어 꿈을 손에 넣었기에, 더욱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 겸허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그가 전달해준 극적인 길에서, 열의를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을 계속해가는 것의 가치를 다시금 배웠다.

 

 

 

 

오역, 의역 많습니다.

 

지금 체력이 바닥이라 오타 확인 못했습니다.

나중에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타 수정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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